이 영화는 친절하지 않다. 굉장히 투박하게 썰린 재료로 만든 음식을 우적우적 씹어먹다가 돌가루가 나오는 느낌이 들기도 하다. 근데 국물 맛은 시원해서 "에잇! 못먹겠네!"란 말을 하기 힘든 뭐 그런느낌이 들었다.
스토리는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다. 다만 역사시간에 주로 배운 내용이 일본군에게 대승을 거둔 '전투' 그 자체라면 영화가 그리고 있는 시간의 상당부분은 '전투'를 위해 각고의 노력을 목숨바쳐 이어가는 독립군의 '과정'이다.
그렇다면 어느 부분이 그렇게 불친절한 느낌으로 다가왔을까. 일단, 머리가 잘려나가는 장면에서 그랬다. 일제가 벌인 잔학행위야 그보다 더했으면 더했겠지만 잘려진 머리가 땅바닥을 구르고 물에 떨어지며 주변에 핏물을 튀기는 장면의 빈도가 생각보다 많았다. '우리를 이렇게 괴롭히고 못살게 굴었던 놈들'이란 메시지를 주기 위한 연출인 걸 모르지 않으나 직접 적인 표현과 은유적인 표현이 좀 더 균형을 맞췄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좀 들었던 대목. 그에 비하면 일본군 사살장면은 그나마 신사적(?)인 죽음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현타'가 온 부분이 있다. 독립군의 작전회의 장면에서 실제 산세를 거의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디오라마가 소품으로 등장하는데... 음... 그 디오라마를 만드는데만 적어도 몇 달은 걸렸을 것 같은 퀄리티여서 영화를 보다가 갑자기 현타가 오고야 말았다. 그 장면을 보자마자 머릿속에서 '저거 만드는데 비용과 시간이 얼마나 들었을까?'란 생각부터 들었으니.
내 기준 이런 '오버스펙' 연출이 또 한 번 현타를 불렀던 장면이 있으니 엔딩에 다다른 장면에서 유골을 공중에 흩뿌리는 장면이다. 홍범도 장군께서 직접 유골분을 공중에 뿌리며 대사를 하시는데 샷 사이즈가 바뀌며 유골분이 바람에 흩날리는 장면에 CG처리를 한 것이 아무리 봐도 좀 과했다 싶다. 차라리 적당히 몇 번 뿌린 후 바로 태극기를 꺼내 펼쳤으면 그게 더 현실적이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기 전엔 평점이나 리뷰를 잘 안보는 편이라 사전 정보없이 봤다. 연출적 불편함은 역사적 사실의 '시원함'으로 어느정도 채워졌으므로 큰 단점은 아니었으나 평론가들의 리뷰를 대충 훑어보니 스토리 적으로도 문제삼은 글들이 꽤 보인다. 반면 실제 관객 평점은 대단히 좋은 편. 두 주연배우의 묵직한 연기가 보는 맛을 더했으니 당연한 결과 아니겠나 싶다. 그런데 전문가 평점은 일반관객 평점의 절반 수준... 그정도로 별로란 생각은 안들던데...
위에서 불편하다고 언급했던 장면들 조차 '영화적' 측면으로 보면 꽤나 수고가 많이 들어간 분장과 소품, 특수효과의 결과물들이므로 영화적 내용과는 다른 차원에서 한 번 더 평가받는게 마땅하다고 본다. 한국영화에서 이정도 리얼함(?)을 볼 수 있게 된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으므로...
어찌되었건 일제시대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교육적' 혹은 '계몽적' 영화들이 많아진다는 건 일본 입장에서 그리 달가운 일은 아닐텐데 일본 스스로 진심어린 사과는 고사하고 다시 제국의 야망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저들은 아직 멀었구나 싶다. 일본 스스로 문명국임을 거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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